한용운은 시인, 승려, 언론인으로서 일제강점기 조선 민족의 정체성과 자주성을 문학과 저널리즘을 통해 고취시킨 대표적 계몽지식인이었습니다. 그의 대표작 『님의 침묵』은 단순한 시집이 아닌 항일 의지의 상징이며, 『유심』지 등 언론 활동을 통해 불교계의 개혁과 민중 계몽에 앞장섰습니다. 본 글에서는 그의 생애와 문학, 언론 저널리즘 활동의 역사적 의미를 다각도로 조명합니다.
1. 한용운의 생애와 사상의 뿌리
한용운(1879~1944)은 조선 말기와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불교 승려이자 시인이며 언론인, 독립운동가였습니다. 그는 충청남도 홍성에서 태어나 유년기에 한학을 익혔고, 이후 불교에 귀의하여 수도에 정진하였으며, 청년기에는 중국으로 건너가 유학하면서 불교와 동양철학에 대한 견문을 넓혔습니다. 그의 이러한 경험은 훗날 그의 문학과 저널리즘 활동의 철학적 기반이 됩니다.
특히 그는 단순한 종교인이나 문학인을 넘어 ‘지식인의 사회적 책무’를 자각한 실천가였습니다. 그는 “민족이 없으면 종교도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였으며, 불교계의 침체와 민중의 무지함을 안타깝게 여기고, 문학과 언론을 수단으로 삼아 조선의 정신을 일깨우고자 했습니다. 그가 활동하던 시기는 일본 제국주의가 조선을 강점하고 언론과 출판, 종교 활동까지 통제하던 엄혹한 시기였습니다.
한용운은 1919년 3·1 운동의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으로 참가하였고, 이후 옥고를 치른 뒤에도 불굴의 정신으로 저술과 강연, 언론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그는 감옥에서 자신의 고통을 ‘조국의 아픔’으로 승화시켰고, 해방운동이 단순한 정치적 선언에 머무르지 않고 정신적·문화적 차원에서 진행돼야 한다고 확신하였습니다.
그의 이러한 생각은 곧 문학과 언론을 통한 저항정신으로 이어집니다. 그는 글이 민족의 눈을 뜨게 할 수 있으며, 문학은 시대를 증언하고 미래를 꿈꾸는 힘이라 믿었습니다. 특히 당시 남성 중심적, 정통 사상 중심의 문단에 맞서 인간 존재의 존엄성과 내면의 자유를 시로 승화시켰으며, 동시에 불교계 언론을 통해 민중과 지식인을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2. 『님의 침묵』과 항일 민족문학의 정수
『님의 침묵』(1926)은 한용운 문학의 정수이자 일제강점기 조선 민족문학의 대표작입니다. 이 시집은 '님'이라는 상징을 통해 독립, 민족, 자유, 사랑 등 다층적인 의미를 담고 있으며, 당시 독자들에게 단순한 서정시가 아닌 정신적 저항문학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는 일본 검열을 피해 직접적으로 ‘조선’, ‘일제’ 등의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지만, 그 함의는 모든 독자가 단번에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뚜렷했습니다.
『님의 침묵』은 한용운 특유의 상징과 은유, 반복과 절제된 감정 표현을 통해 ‘침묵 속 외침’을 구현한 작품으로 평가받습니다. “나는 님을 잃었노라”라는 구절은 단순한 연인의 상실이 아니라 ‘나라를 잃은 절규’로 해석되며, 민족의 상실감과 그리움, 재건의 의지를 동시에 담고 있습니다.
문학사적으로 『님의 침묵』은 시적 언어의 미학을 민족정신과 결합시킨 매우 독창적인 시도였으며, 이후 한국 저항문학의 한 원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당시 문단은 일본식 자연주의와 개인감정 중심의 서정시가 유행하던 시기였지만, 한용운은 그 흐름과 거리를 두고 민족과 시대, 인간의 자유를 테마로 삼아 문학의 공공성과 정치성을 선명하게 보여줬습니다.
『님의 침묵』은 비단 문학작품으로 끝나지 않고, 청년 계몽운동과 학생독립운동, 문학회 조직 등 다양한 실천 활동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는 자신의 시집을 일제의 감시 속에서도 비밀리에 배포하며 청년들에게 정신적 각성을 촉구했고, 시인으로서가 아닌 ‘행동하는 문인’으로 민족문학의 실천성을 구현했습니다.
또한 그는 자신의 시를 통해 여성을 주체로 그리는 작업도 선도했습니다. 당시의 남성 중심 서사 속에서, 그는 여성을 민족과 시대의 상징으로 제시했고, 이를 통해 문학적 저항과 동시에 조선 내 여성인권 담론까지 선취하는 선각자적 시선을 보여줍니다.
3. 『유심』지 발간과 불교계 언론운동
한용운의 언론 활동 중 가장 중요한 업적은 1918년 시작된 『유심』지의 창간과 집필 활동입니다. 『유심』은 단순한 종교 잡지가 아니라, 조선 불교의 자주성과 근대화를 추구한 지성의 산실이자 항일 계몽운동의 주요 매체였습니다. 그는 주필로서, 그리고 편집자로서 모든 원고를 검토하고 직접 주요 사설을 집필하였으며, 이를 통해 불교계의 침묵을 깨고 사회 참여를 독려했습니다.
『유심』의 기조는 ‘불교의 대중화’, ‘민족과 함께하는 종교’, ‘교육과 언론의 통합’이었습니다. 그는 불교가 단지 개인의 해탈이나 교리의 전달에 머물 것이 아니라, 사회 현실과 직면하며 민중의 고통에 응답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와 같은 사상은 당시 보수적이던 불교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고, 젊은 승려들과 민족 지식인들의 큰 호응을 받게 됩니다.
『유심』은 정치적 논설, 종교적 비판, 사회 현실 진단 등 다채로운 글들을 게재하며, ‘저항하는 언론’의 면모를 분명히 드러냈습니다. 특히 일제의 불교 통제 정책, 사찰령 문제, 민족교육 억압 등에 대해 강력히 비판하며, 민족의 자존과 불교계의 자주성을 외쳤습니다.
한용운은 이 지면을 통해 “불교는 더 이상 조선에서 식민 종교일 수 없다”고 선포했고, 불교의 민족화, 대중화, 교육화를 주장하며 불교계의 근대화를 선도했습니다. 그는 ‘불교는 머무는 것이 아니라, 걸어가야 한다’는 글에서 승려와 지식인들이 사회를 향해 나아갈 것을 호소했습니다.
그의 언론활동은 단지 종교 담론에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유심』은 문화비평, 문학평론, 시사 해설까지 다루는 종합매체였으며, 이는 ‘언론의 종합화’라는 당시로서는 매우 진보적인 시도를 보여줍니다. 또한 당시 유명 시인들과 젊은 필자들에게 지면을 개방함으로써 문학운동과 불교계 언론운동의 연결 통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결론: 문학과 언론을 하나로 엮은 민족정신의 실천자
한용운은 단순한 시인이나 승려가 아닌, 문학과 언론을 통해 민족의식과 인간 해방을 실천한 행동하는 사상가였습니다. 그의 『님의 침묵』은 조선 민족의 상실과 희망을 상징하는 문학의 결정체였으며, 『유심』지 등 언론활동은 불교계와 민족 지식인을 조직하고 계몽한 지적 투쟁의 장이었습니다.
그는 ‘글은 생각을 움직이고, 생각은 세상을 바꾼다’는 확고한 신념 아래 문학과 언론을 하나로 엮었고, 이를 통해 조선 민중의 정신적 독립을 위한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그는 조선 문학사, 종교사, 언론사 모두에 걸쳐 지워지지 않는 족적을 남겼으며, 그의 사상과 실천은 오늘날까지도 저항문학과 공공저널리즘의 원형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한용운을 단지 시인이 아닌, ‘문학과 언론을 통한 민족운동가’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의 글은 조용하지만 강력한 외침이었으며, 민족의 혼을 지키기 위한 정신적 바리케이드였습니다. 그의 정신은 여전히 살아 있고, 우리가 언론과 문학의 사회적 책임을 논할 때, 가장 먼저 떠올려야 할 이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