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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시경의 국어운동 /말모이, 한글교육, 민족계몽

by goodmi1 2025. 6. 9.

말모이 영화 포스터

 

주시경은 일제강점기 조선어를 지키기 위해 헌신한 대표적 국어학자이자 계몽운동가였습니다. ‘말모이’ 편찬을 비롯해 한글 정리, 국문법 체계화, 국어 교육자 양성에 힘쓴 그는 한국어를 통한 민족 정체성 확립을 실천으로 옮긴 지식인이었습니다. 본 글에서는 그의 생애, 국어정신의 철학, 계몽운동과 말모이 운동의 의미를 조명합니다.

1. 주시경의 생애와 민족계몽운동의 출발

주시경(1876~1914)은 일제강점기 초기에 국어학자로 활동하며, 우리말과 글을 지키고 정리하는 데 평생을 바친 인물입니다. 그는 서울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한문 교육을 받았지만, 개화기 조선의 변화 속에서 국어의 중요성을 자각하고 국문 연구에 뜻을 두게 됩니다. 그의 학문적 여정은 단순한 언어 연구를 넘어, 민족 정체성 회복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 조선은 일본 제국주의의 압박 아래 놓이며 문화 말살 정책이 본격화되던 시기였습니다. 주시경은 이에 맞서 우리말을 지키는 것이 곧 민족을 지키는 길임을 강조하며, 국어학을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실천합니다. 그는 교육, 학술, 출판, 운동 등 다방면에서 활약하며 조선어 정립과 보급, 그리고 문법 체계화에 이바지했습니다.

특히 그는 국문 연구소에서 강사로 활동하며 본격적인 국어학 교육을 시작합니다. 이 시기는 그가 제자 양성에 힘쓰고, 조선어 정리를 위한 학문적 기반을 마련하던 시기로 평가됩니다. 주시경은 '우리말은 우리 얼'이라는 신념으로, 국어를 단지 언어가 아닌 민족정신의 표현으로 보았습니다. 그는 언어를 지키는 일이야말로 곧 나라를 지키는 일임을 끊임없이 역설했습니다.

주시경은 이황과 이이의 도학적 전통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그는 말과 글을 올바로 세우는 것이 인격 수양과 사회 정의의 출발점이라고 보았으며, 이는 이황의 수기치인 정신과 이이의 실천적 경세관을 현대적으로 계승한 모습입니다. 그는 인간 정신의 기초가 언어에 있으며, 언어가 왜곡되면 사고와 윤리 또한 왜곡된다고 보았습니다. 이런 관점은 그의 문법 교육과 표기법 정비에 녹아 있습니다.

그는 다양한 교육기관에서 우리말과 글을 가르쳤으며, 조선어 교과서 편찬에도 깊이 관여했습니다. 당시 조선은 일제에 의해 학교 교육에서 일본어가 강제되는 상황이었지만, 그는 끝까지 조선어 교육을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주시경은 일제의 탄압 속에서도 우리말 사전을 준비하며, 언어를 통한 민족 계몽을 실천했던 '학자형 운동가'였습니다.

그의 제자 중 다수는 훗날 조선어학회, 한글학회, 국립국어연구소 등의 설립과 활동에 중심 인물이 되었고, 주시경이 남긴 언어학적 유산은 이후 세대의 조선어 사전 편찬과 맞춤법 통일 작업에 결정적 기반이 되었습니다. 그는 학문과 실천을 겸비한 계몽운동가였으며, 조선어 연구의 뿌리를 내린 선구자였습니다.

2. 국어학 체계 정립과 ‘말모이’ 운동의 역사

주시경이 국어학사에 남긴 가장 위대한 업적 중 하나는 바로 ‘국어 문법의 체계화’와 ‘말모이 편찬의 기초’였습니다. 그는 조선어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교육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국문법을 학술적으로 연구하였으며, 그 결과 우리말의 구조와 특성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다양한 문법 이론을 정립했습니다.

그가 사용한 용어들, 예를 들어 ‘주어’, ‘목적어’, ‘용언’, ‘체언’ 등은 오늘날 국어 문법 교육에서도 사용되고 있는 핵심 개념입니다. 이는 서양 언어학의 영향이 아닌, 조선어의 독자적 구조에 기반한 분석이었으며, 우리말을 외국어 문법에 억지로 끼워 맞추지 않고 고유의 논리로 설명하려 했던 노력의 결과입니다.

주시경은 문법 연구뿐 아니라 국어 어휘 수집과 사전 편찬에도 매진했습니다. 그가 주도한 ‘말모이’ 운동은 조선어학회의 활동으로 이어졌고, 이는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표준국어대사전’의 정신적 기초가 되었습니다. 말모이는 '말을 모은다'는 뜻으로, 당시 민간에서 쓰이던 순우리말과 방언, 고어를 포함한 우리말 전체를 집대성하려는 작업이었습니다.

이 운동은 1910년대 일제에 의해 조선어 사용이 점점 제한되던 시점에 시작된 것으로, 단순한 언어학 작업을 넘어 민족문화 보존운동이었습니다. 주시경은 제자들과 함께 방방곡곡에서 쓰이는 우리말을 수집하고, 표기법과 뜻을 정리하며 민중의 삶과 언어를 연결시키려 했습니다. 이 과정은 철저한 학술 작업이었을 뿐 아니라, 식민 지배에 저항하는 ‘문화 독립운동’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또 맞춤법 통일 작업에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당시까지도 조선어의 표기 방식은 한자음과 방언이 뒤섞여 혼란스러웠으며, 일제는 이를 빌미로 조선어의 비과학성을 강조하며 일본어 사용을 강요했습니다. 주시경은 ‘한글’의 표기 원칙과 발음 체계를 연구하여, 보다 정교한 맞춤법 기준을 제시했고, 훗날 조선어학회의 ‘한글 맞춤법 통일안’(1933)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이와 함께 그는 '국문연구소'를 통해 우리말을 교육하고 연구하는 실무기관의 역할도 수행했습니다. 국문연구소는 당시 한성부 내무부 산하에서 운영되었지만, 주시경은 이를 단순한 행정기관이 아닌 ‘국어 정신을 세우는 연구 기지’로 인식했습니다. 그는 언어는 단지 소통의 수단이 아닌, 민족의 정체성과 얼을 담은 그릇이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말모이 운동의 의미는 단순히 사전 편찬을 넘어서, 일제강점기 언어 말살 정책에 맞선 조선 지식인의 집단 저항이라는 데 있습니다. 주시경은 이 운동의 이론적 기초를 마련했을 뿐 아니라, 실무와 교육에서도 주도적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우리말을 정리하고 기록하고 가르치는 일이야말로 가장 오래가고 강력한 독립운동이라 믿었습니다.

3. 한글교육 실천과 조선어학회의 뿌리

주시경은 국어학자로서 이론을 정립하는 데 그치지 않고, 평생을 한글 교육 현장에서 보냈습니다. 그는 국문연구소, 보성전문학교, 배재학당, 협성학교 등에서 조선어를 직접 강의하며 수많은 제자를 양성했습니다. 그의 교육은 단순한 문법 수업이 아니라, 조선어의 아름다움과 과학성, 그리고 우리말을 사용하는 민족적 자부심을 심어주는 철학적 수업이었습니다.

당시 일제는 조선어 교육을 철저히 통제하고 있었고, 공교육기관에서는 일본어만을 중심으로 가르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시경은 사립 교육기관, 교재 제작, 강연 활동을 통해 끊임없이 조선어의 가치를 강조했습니다. 그는 "말을 빼앗기면 생각도 빼앗기고, 생각을 빼앗기면 민족은 사라진다"라고 역설하며 언어와 민족정신의 불가분 관계를 일깨웠습니다.

그의 제자들은 훗날 조선어학회의 중심 인물들로 성장하게 됩니다. 이윤재, 최현배, 김윤경, 이극로 등은 주시경의 학문과 철학을 이어받아 조선어 맞춤법 통일안 제정, 한글날 제정, 사전 편찬 등에 결정적 역할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학문적·운동적 계보는 ‘주시경-조선어학회-한글학회’로 이어지는 국어운동의 주류 흐름을 형성하였습니다.

그는 또한 교육 자료와 문헌 작성에도 헌신했습니다. 『국어문법』, 『보통학교 조선어독본』, 『국문연구의 길잡이』 등은 조선어 교육의 기초 텍스트로 활용되었고, 그의 강의안과 필기는 지금도 국어교육사에서 소중한 사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특히 그는 '말모이 원고'를 비롯해 다양한 조선어 어휘집과 문법 노트를 남겨, 이후 조선어대사전 편찬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주시경은 비록 생전에 모든 작업을 마치지 못하고 1914년 39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국어 정신은 제자들을 통해 살아남았고, 20세기 내내 이어졌습니다. 그의 교육은 단지 교실 안에서 머문 것이 아니라, 후학을 길러내고, 민족의 말과 글을 지켜낸 교육의 혁명이었습니다.

결론: 언어로 민족을 살린 국어학자의 유산

주시경은 단지 언어를 연구한 학자가 아닙니다. 그는 일제 강점기라는 암울한 시대 속에서 민족의 정신을 언어로 지키려 했던 계몽운동가였고, 교육자였으며, 실천적 독립운동가였습니다. 그의 사전 작업, 문법 정리, 교육 실천은 모두 민족 정체성을 회복하고 민중에게 자각을 심어주려는 강력한 저항의 언어였습니다.

그의 사상은 “말은 얼이다”라는 한마디로 집약됩니다. 그는 민족의 얼을 되살리고자, 말과 글부터 바로잡는 일을 자신의 사명으로 여겼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자유롭게 쓰는 한글, 배우는 국어 교육, 활용하는 사전은 모두 그의 철학과 실천 위에 서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주시경은 죽었지만, 그가 지킨 말과 그가 키운 사람들은 살아남았습니다. 그는 '한글의 아버지'라는 별칭처럼, 현대 국어학의 뿌리이며, 교육을 통한 민족 자각의 선구자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가 다시 한번 ‘언어의 힘’을 돌아봐야 할 때, 그의 삶은 여전히 강력한 영감을 줍니다.

그의 정신은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말을 얼마나 이해하고 아끼고 있는가? 주시경이 지킨 언어의 자존심, 이제는 우리가 지켜야 할 차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