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한 박사는 대한민국의 대표 기업가이자 교육자, 독립운동가였습니다. 그가 설립한 유한양행은 단순한 제약회사가 아니라, ‘사람을 위한 회사’라는 철학 아래 윤리경영과 사회공헌을 실천한 한국형 사회적 기업의 원형이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유일한 박사의 생애와 신념, 유한양행의 윤리경영, 사회적 책임 이행, 그리고 그가 한국 사회에 남긴 기업가정신을 심층 분석합니다.
유일한 박사의 생애와 독립정신
유일한(柳一韓, 1895~1971) 박사는 황해도 평산에서 출생하였으며 자는 천여, 본관은 진주입니다.. 그의 인생은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운동가로, 독립 이후로는 한국사람들의 보건을 지키기 위하여 유한양행을 설립한 기업인입니다. 기업인으로서 기업의 이윤 확보보다는 국민의 보건과 교육 그리고 기업가정신이 하나로 연결된 독특한 궤적을 그립니다. 그는 어린 시절 유교적 가정에서 성장했지만, 시대적 흐름 속에서 일찍이 미국으로 건너가 공부를 시작하게 됩니다. 미국 유학 당시 그는 오하이오 웨슬리언 대학과 코넬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하고, 이후 피츠버그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합니다.
미국에 체류하던 유일한 박사는 일제의 한국 강제 병합과 민족 수난의 현실을 인식하며 적극적인 독립운동에 참여합니다. 그는 재미한인단체에서 활동하며 기금을 모으고, 해외에 조선의 상황을 알리는 활동에 힘썼습니다. 특히 안창호, 서재필 등과 교류하며 독립운동의 실질적 기반은 바로 ‘교육’과 ‘경제력’이라는 인식을 갖게 됩니다. 이는 훗날 그의 기업 철학에도 그대로 투영됩니다.
1926년 귀국 후, 그는 약품 수입 및 유통업을 시작으로 유한양행을 설립합니다. 그의 창업 동기는 단순한 사업적 성공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정직하고 신뢰받는 약을 통해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것이 곧 조국을 위한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인식은 유일한 박사의 사업 목적이 이윤 추구에 국한되지 않고, 공공의 건강과 생명 존중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는 독립운동가로서의 정체성을 기업가로서도 유지했으며, 유한양행이 성장한 이후에도 기득권이나 친일 인사들과의 유착 없이 철저하게 ‘국민의 기업’을 지향했습니다. 또한 그의 가족과 후손에게 유산을 상속하지 않고 전 재산을 사회에 기부한 것은 “기업은 공공재다”라는 신념의 실천이었습니다.
유한양행 설립과 윤리경영의 실천
유한양행은 1926년, 유일한 박사가 설립한 국내 최초의 근대적 제약회사 중 하나로, 설립 당시부터 윤리와 공익을 핵심 경영가치로 삼았습니다. 그는 사업 초기부터 “정직한 약을 통해 신뢰받는 기업이 되자”는 철학을 강조했고, 이는 단순한 마케팅 구호가 아닌 실제 운영 원칙으로 정착됐습니다.
회사는 국내 제약 산업의 기반이 전무하던 시기에 연구개발, 품질관리, 유통체계의 선진화를 목표로 운영되었고,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직원 복지와 사회기여 프로그램도 운영되었습니다. 유 박사는 철저한 품질 기준을 고수했으며, 수입약품의 정품 유통은 물론, 자체적인 연구소를 통해 국산화를 추진했습니다.
그는 경영의 중심을 ‘사람’에 두었습니다. “직원은 회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가 직원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그의 인식은 당시 재벌 중심의 수직적 조직 문화에서 매우 이례적인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유한양행은 직원들에게 주식을 배분하며 회사의 공동 경영자로 참여시켰고, 노동시간, 복지, 교육 등에 있어 시대를 앞선 시스템을 도입했습니다.
세무와 회계 역시 정직함을 원칙으로 하여 탈세 없는 기업, 국가와 함께 성장하는 기업의 모범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국가에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는 기업은 존재할 자격이 없다”라고 말하며, 기업의 사회적 책무를 강하게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투명경영은 오늘날 ESG 경영의 윤리적 지표로 계승되고 있습니다.
특히 유한양행의 가장 혁신적 모델 중 하나는 유한재단과 유한학원 설립입니다. 유일한 박사는 유한양행의 수익 일부를 유한재단으로 이전하여 장학사업과 교육기관 운영에 투자했고, 유한공업고등학교와 유한대학교는 기술인재 양성과 사회 진출을 위한 교육기관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인재양성과 사회환원의 기업가정신
유일한 박사의 기업 철학은 그 자체가 교육과 사회적 책임의 실현이었습니다. 그는 수많은 이익을 얻고도 사재를 축적하지 않았으며, 기업의 지속 가능성과 사회적 가치에 집중했습니다. 유한재단은 현재까지도 장학금 지급, 연구지원, 사회복지 활동을 수행하며 그의 뜻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는 기업의 존재 이유는 인재 양성에 있다고 보았습니다. “기업이 아무리 돈을 벌어도 사람을 키우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는 말을 자주 했으며, 유한양행의 성장도 결국 우수한 인재들의 자발적인 헌신과 성장에 달렸다고 믿었습니다. 이를 위해 유한양행은 사내 교육 프로그램, 해외 연수, 복지 제도 등을 운영하며 인재 양성에 적극 투자했습니다.
사회환원 측면에서도 유 박사의 행보는 탁월했습니다. 유한양행은 지역사회의 교육, 보건, 복지 프로젝트에 꾸준히 참여했으며, 특히 유한재단은 소외계층을 위한 의료지원, 장학사업, 긴급구호활동 등을 활발히 전개했습니다. 그는 ‘기업 이익은 국민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철학으로 자신의 지분까지 사회에 환원했습니다.
그가 남긴 마지막 유언은 매우 상징적입니다. “나의 유산은 자식에게 주지 마라. 그것은 사회의 것이다.” 유일한 박사는 기업가로서 가족보다 국민을 먼저 생각했으며, 그의 이런 선택은 현재 수많은 사회적 기업가에게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그의 정신은 시대를 넘어 오늘날까지도 유한양행과 수많은 교육기관, 공익 재단을 통해 실현되고 있습니다.
결론: 윤리적 자본주의를 실현한 기업가
유일한 박사는 단지 성공한 기업가가 아니라, ‘무엇을 위해 기업이 존재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에 실천으로 답한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기업가정신은 지금의 ESG, 사회적 가치 경영, 공정한 자본주의와 정확히 맞닿아 있으며,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윤리경영의 표본입니다.
그가 보여준 기업의 역할은 자산 증식이 아닌, 국민의 건강을 지키고, 인재를 양성하며,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는 한국형 사회적 기업의 원조이자, 기업을 통해 국가 발전에 기여한 진정한 리더였습니다. 유일한 박사의 삶은 오늘날에도 많은 후배 기업가, 교육자, 청년들에게 울림을 주고 있으며, ‘정직하게 번 돈, 정당하게 쓴 돈’이 가장 위대한 자본이라는 진리를 증명해 주었습니다.
그의 정신은 오늘날에도 유한양행을 비롯한 여러 기관과 사람들 속에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역시 그 뜻을 이어받아, 공익을 위한 기업, 사람을 위한 경제, 그리고 미래세대를 위한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데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